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새미 소사 (문단 편집) ==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명예의 전당]] 탈락 == 은퇴 후 소사 본인은 명예의 전당 입성을 내심 기대하는 듯한 말을 했으나, 약쟁이였다는 게 들통난 마당에 표심을 잡아줄 친정팀 컵스에서의 입지마저 본인의 만행으로 박살낸 이상 그의 입성 가능성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워졌다. 결국 2013년 [[명예의 전당]] 투표 첫 턴에서는 12.5%의 낮은 득표율을 기록했고, 2014년도에는 7.2%로 겨우 후보자격만 유지했다. 2015년도 역시 6.6%로 간신히 유지하는 선에 그쳤다. 2016년에는 7%로 약간 오르긴 했지만 여전히 간당간당한 상황. 사실 금지약물 복용 전과가 밝혀지기 전에도 소사의 명예의 전당 입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는데, 상기한 코르크 배트 사건 이후 이미지가 많이 실추된데다 [[호세 칸세코]]의 자서전을 비롯해 소사의 금지약물 복용 여부에 대해서 반 확신(...)하는 의견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단지 '의혹' 만으로 명예의 전당 입성 여부를 판가름하는 것이 정당한가에 대해서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는데, 결과적으로 약물까지 걸려버리며 부질없는 논쟁이 되어버렸다. 2017년 투표에서는 8.6%를 득표하여 역시 소폭 올랐다. 다만 이번 투표에서 [[로저 클레멘스]]와 [[배리 본즈]]는 각각 54.1%와 53.8%를 득표한 상황이라 일부에선 소사에게 좀 박하다는 의견도 나온 적이 있다. 그러나 소사와 본즈, 클레멘스는 비슷한 선상에 둘 수가 없는 수준이다. 소사가 전국구로 이름이 알려진 것은 사실상 1998년 맥과이어와의 홈런 레이스때였고, 그때부터 5년간은 리그를 지배하는 슬러거였던 것은 사실이다. 헌데 소사가 데뷔하던 무렵부터 본즈는 이미 MVP를 수상하고 메이저리그의 No 1.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선수였으며 1998년까지 3번의 MVP, 도루왕, 홈런왕, 출루율1위 4회, 40-40클럽, 역대 최초 400홈런-400도루에 골드글러브 8회 수상 등[* 그것도 중견수가 수상을 독차치하던 시절에 좌익수로 달성한 성과다.] 선수로서 이룰건 다 이루고 그 시점에 은퇴해도 명예의 전당 득표율이 관심거리인 당대의 1인자였다. 애초에 본즈는 그때나 지금이나 윌리 메이스 이후 최고의 야구선수이며, 윌리 메이스와 동등한 선에 놓고 비교할 수 있는 유일한 선수이기도 하다. [* 게다가 1998년 시점까지도 본즈는 약물을 공개적으로 비웃고 경멸하던 쪽이었는데(마크 맥과이어가 당시 금지약물이 아닌 안드로 복용 사실을 공개했을때 노골적으로 경멸하는 인터뷰 내용도 있다.), 훨씬 수준높고 차원이 다른 야구를 하는 자신이 단순히 홈런 갯수에 밀린다는 이유로 주목을 덜 받게 되자 격분해서 약물 복용하고 야구의 신이 되어버린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소사의 5년 중에서도 사실상 본즈보다 우세하다 할 수 있는 건 1998~2000년 단 3년에 불과하고, 그마저 1999년도는 본즈가 부상으로 단 102경기만 출전했고, 2000년도는 홈런 1개 차이로 소사가 홈런왕이 되었던 것 뿐, 타격 전반의 성적을 고려하면 소사의 우세라고 보기도 어렵다. 거기다 본즈의 약물 적응기를 끝내고 복용 효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났다고 볼 수 있는 2001년부터는 비교하면 2001년을 제외하고는 비참한 수준으로 격차가 크다.[* 거기에 본즈와 달리 자신을 적극적으로 편들어줄 유명 야구인도 없다는것도 투표에서의 가능성이 떨어짐에 한몫한다. 본즈는 아버지 [[바비 본즈]]와 스승 윌리 메이스부터 해서 친구까지 든든한 방패가 되주었지만 소사에겐 그런게 없었다.] 2018년은 7.8%로, [[배리 본즈]]와 [[로저 클레멘스]] 둘다 56.4%, 57.3%을 기록하며 소폭 오른 것에 비해 오히려 다시 떨어지면서 이젠 후보자격 유지 자체를 걱정해야할 판이다. 2019년에는 8.5%를 기록하며 무난하게 장기투숙하다 그대로 떨어질 것이란 전망이 많다. 2020년엔 13.9%를 기록하며 눈에띄게 오르긴 했지만 워낙 득표율이 낮으니 거기서 거기. 로저 클레멘스 역시 투수로서 메이저리그에서 차지하던 위상은 배리 본즈 못지않다. 우선 클레멘스는 통산 성적부터 라이브볼 시대 톰 시버와 함께 우완투수 최고로 꼽히며,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반의 위력은 사이영상 3회로 설명이 끝난다. 즉 시대를 지배했다는 점에서 [[밥 펠러]], [[톰 시버]], [[밥 깁슨]]에 필적하는 수준이다. [[월터 존슨]] 이후 근 100년간 적어도 세 손가락에 꼽을 수 있는 우완투수라는 말이다.[* 클레멘스는 역대 최다 사이 영 상 수상자이며 통산 fWAR로는 월터 존슨마저 뒷주자로 두는 선수이다.] 게다가 토론토로 트레이드 된 이후 약물을 사용했다고 평가하는 점을 고려한다면, 약물을 하지 않았던 보스턴 시절에도 당대 최고였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근래 본즈와 클레멘스의 득표율이 올라가는 것에는, 약물복용 이전의 모습만으로도, 또는 약물을 사용하지 않고 자연 은퇴했어도 당연히 명예의 전당에 들어갈 수 있는 선수라는 인식이 작용했다고 봐야 한다. 본즈의 경우에는 약물 사용이 의심되는 1999년 이후의 기록을 전부 삭제해도 명예의 전당 입회가 가능한 수준이다. 새미 소사는 이들의 위치와는 아득히 떨어져 있는 선수이며, 시즌의 임팩트나 스타성 면에서는 약물 라이벌 마크 맥과이어에도 못 미친다고 봐야한다. [* 마크 맥과이어는 데뷔시즌부터 역대 신인 최다 49홈런을 때려낸 괴물이며, 1990년대 초반까지 투고타저가 극심하던 시절에도 홈런 3위안에 늘 끼어있고 40홈런 언저리를 날리던 거물이었다. 게다가 1996년 52홈런, 1997년 58홈런으로 2년 연속 50홈런을 때리고 신기록을 기대하게 만들던 당대 최고의 스타이기도 했다. 인기와 스타성에서도 켄 그리피 주니어에 필적하던 선수였고, 역사적인 1998시즌 신기록으로 메이저리그의 구세주이자 영웅이었으니...누적 홈런이 조금 더 많다고 해서 소사의 위치가 맥과이어의 위라는 인식은 거의 없다.] 소사의 기록에 비해 평가가 많이 떨어지는 건 약물보다는 코르크배트 사건 이후 대응과 컵스에서 내몰리는 과정에서 보인 무개념이 더욱 큰 원인이다.[* 왜냐하면 소사는 애초에 비공개로 남겨둘 예정인 검사에서 약물이 걸렸고, 이후에 미첼 리포트에서는 이름을 올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비공식 검사에서 걸린 [[데이비드 오티즈]]는 아예 첫 턴에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다만 전성기가 비공개 검사를 한 2003년 이후인 오티즈와는 달리 소사는 2003년이 마지막 전성기 시즌이라는 차이점은 있다.] 그 사건 이전까지 비록 클럽하우스 내에서는 불만이 있을지언정 소사의 문제점은 밖으로 드러나지 않았고, 맥과이어와의 경쟁에서 보여준 좋은 이미지와 파워풀한 스윙, 친근함과 미소로 팬들의 사랑을 받아 대중적인 호감도도 높았다.[* 게다가 당시 신이 된 배리 본즈를 제외한다면 소사와 어깨를 나란히 할만한 타자는 알렉스 로드리게스, 토드 헬튼, 짐 토미 등 몇몇에 불과했다.] 그러나 어찌보면 약물보다 더 비겁하게 느껴질 수 있고 기록의 가치 훼손이 더욱 크게 다가오는 도구적 속임수라는 면에서, 코르크 배트 사용은 대중들에게 엄청난 충격과 실망으로 다가왔다. 즉 '소사는 지금까지 코르크 배트를 사용해서 부정하게 홈런을 쳐왔다' 이런 인식이 널리 퍼지며, 그 동안의 기록과 세기의 홈런 레이스마저 부정한 배트의 힘으로 기록되었다는 선입견을 남겨버린 것이다. 더구나 소사가 보여준 그동안의 선량하고 좋은 인상 때문에 더욱 반감이 심해졌는데, 이 과정에서 소사의 대응은 미국인들의 정서 상 가장 안좋게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일관했다는 점이다. 다수의 미국인들은 '쿨병'이라 표현해도 될 만큼 어떤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사고를 친 당사자가 즉각 확실하게 인정하고 사과한 다음 책임을 지는 형태로 가는 것을 선호한다. 법적 처벌이 뒤따를 정도로 명백한 범죄행위가 아닌 한 계속 그 사고에 대해 질책하거나 물고 늘어지는 경우는 드물고 피해자가 납득할만한 사후처리를 원인 제공자가 이미 했음에도 특정 사건을 계속 들먹이며 물고 늘어지는 쪽이 있으면 그쪽에 더욱 큰 비난을 가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가까운 예로 약물복용 의심 기사가 나온 이후 [[앤디 페티트]]와 로저 클레멘스의 대응 방식을 비교하면 이해가 빠르다. 그리고 이후 페티트와 클레멘스에 대한 대중들의 상반된 태도와 현재까지의 평가 역시 극명하게 갈리는 점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미국 특유의 '아메리칸 드림' 정서에서 볼 수 있듯, 잘못을 범해도 충분히 사과하고 책임을 진다면 다시금 기회를 주는 것에 관대한 편이다. 그러나 소사는 사건이 벌어진 후 사과보다는 책임을 회피하고 발뺌만 하는 모습을 보여주다가, 마지못해 변명으로 계속 일관하는 모습이었기 때문에, 팬들의 실망감을 몇배로 키워버리고 '사기꾼'(Cheater)이라는 선입견을 대중들에게 각인시켜버린 것이다. 게다가 여론이 계속 악화되어 갈수록 언론 플레이에 의존하고 자기합리화 하는 모습으로 헛발질을 반복하면서 대중의 폭넓은 지지를 잃고 말았다. 더구나 안좋은 선입견으로 바뀌어리자마자 컵스 팀의 분위기를 해치는 행동과 발언이 연속적으로 터져나와 소사의 부정적 이미지는 계속 증폭되어 갔으며, 결국 클럽하우스 내에서의 개념없고 독선적인 모습까지 언론에 퍼지면서 되돌릴 수 있는 선을 넘어버렸다. 이렇게 악화될대로 악화되었으면 자중하면서 야구에 집중해서 실력으로 묵묵히 보여도 모자랄 판에, 팀을 무단이탈하고 선수, 코칭스탭, 구단, 팬 모두의 존중을 잃고 [[답이 없다|'구제불능']]이라는 낙인까지 찍혀버린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약물선수들보다 훨씬 더 극한인 상황인데, 여기에 약물복용 위증과 약물 적발건까지 연달아 추가되면서 소사의 이미지는 아예 회복 불가능이 되었다. <마지못한 사과와 변명>,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책임 회피> <뻔뻔한 거짓말,>, <속임수와 부정도구로 얻은 실적> 이는 미국인들의 일반적인 정서를 고려할 때 가장 부정적으로 느끼는 것들이다. 이중에 하나만 있어도 치명타인데 소사는 짧은 기간에 이 4개의 사항을 모두 해냈다. 때문에 시카고 팬들과 컵스 구단이 소사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시카고 컵스의 상징이었고 선수생활의 대부분을 보냈으며, 역사에 남을 기록들을 여러개 달성하고도 아무도 소사를 찾지 않고 관심도 보이지 않으며 언급도 최대한 피하고 있다. 어지간히 구단과 안좋게 끝나더라도 위대한 업적을 세운 선수들의 경우 시간이 지나면 구단이 앙금을 풀고 초빙하게 되는데[* 대표적인 예로 [[프랭크 토마스]]가 있다. 부상과 노쇠화로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사이가 벌어지면서 오클랜드로 이적했음에도 39홈런 114타점으로 재기에 성공하고 500홈런까지 달성했다. 은퇴 이후엔 화이트삭스가 먼저 손을 내밀면서 구단과 화해하고 등번호 35번을 영구결번하고,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어 영광을 누렸다. 물론 토마스는 1990년대에 이미 약물 검사를 도입하자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등 약물과는 백만광년 떨어진 청정타자이기도 하다.], 소사의 경우는 업적만으로 보면 영구결번이 진작에 진행되었어야 했고 소사 본인도 바라고 있지만, 구단과 팬들은 그를 없는 사람 취급하고 있다. 비슷한 입장인 배리 본즈만 해도 역시 이와 비슷한 안 좋은 행동들로 비판의 대상이며, 언론과의 사이도 영 좋지 않지만, 고향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게 대놓고 버림받지는 않고 영구결번도 받았고 팬들도 '그래도 우리팀의 스타'라는 대접은 받고 있고, 동시기 홈런레이스 경쟁자였던 [[마크 맥과이어]] 역시 약물복용 전과가 있었음에도 친정팀 카디널스에서 타격코치로 지내면서 타율과 출루율 1위팀으로 만들었고, 2011년 월드시리즈까지 우승시키면서 코치로서 능력도 인정받았을 뿐더러, 카디널스 선수들로부터 존경의 대상까지 받고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소사가 저지른 짓이 얼마나 몰상식한 짓인지를 알 수 있다. 그런 와중에도 소사는 여러차례 언론에 컵스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고 영구결번 시켜달라고 징징대는 모습을 보여 냉대와 비웃음을 사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세이버매트릭스의 대두는 그의 평가를 더더욱 하락시켰는데, 그가 홈런에 비해 매우 생산성이 떨어지는 타격을 했던 것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세이버 스탯만 보면 그는 그저 홈런만 많은 공갈포로, 그의 커리어 OPS+는 128에 불과하다. 참고로 마크 맥과이어의 경우는 워낙 통산 출루율이 높은 OPS 히터로 OPS+가 163이며 [[블라디미르 게레로]]의 경우는 타출장이 전반적으로 고르게 높아서 OPS+가 140이다. 비록 새미 소사가 98년부터 2002년까지의 전성기 동안에는 출루율도 상당했고 생산성도 좋았지만[* 전성기 시절에는 고의사구의 영향도 있긴 했지만 볼넷을 적지 않게 얻어내어 출루 능력도 있었다. 그러나 2000년과 2001년을 제외하면 출루율이 4할도 못 넘었고, 타출갭이 1할을 넘긴 것도 커리어하이인 2001년과 마지막으로 MVP 컨텐더급 성적을 낸 2002년이 끝이다.] 이 때 외에는 홈런은 많아도 생산성이 낮은 타자였던 것. 다만 WAR만 보면 새미 소사의 WAR도 60내외 수준인 데다가 MVP도 1위 1회, 2위 1회가 있어서 명예의 전당 보장 수준은 아니지만 명예의 전당에 도전할 수 있는 수준은 되는데, 이것은 맥과이어나 게레로가 수비 부문에서 WAR를 많이 까먹은 반면 새미 소사는 평타는 쳤기 때문. 즉 순수하게 타격만 보면 새미 소사는 맥과이어와 게레로에 비하여 많이 뒤떨어지는 것이 분명하다. 이런 상황에서 명예의 전당 득표율 상승은 어림도 없는 일이었고 실제로도 10년차에도 그렇게 되었다. 저러한 행적들은 '명예'와 지극히 거리가 먼 일이며, 명예의 전당 입성을 위해 측면으로 지원하고 홍보할 수 있는 지원군인 구단도 소사를 외면하고 있다. 컵스의 열성 팬들조차 구단만큼 냉랭하고 무관심하게 소사를 대하고 있는데 5% 미만으로 탈락이 안 된 것만 해도 감지덕지라고 봐야할 것이다. 2021년 9번째 투표도 17.0%로 역시나 처참한 지지율을 기록했다. 마지막 투표인 2022년 투표에서도 18.5%에 그치며 탈락했다. 소사처럼 2003년 비공식 검사에서 적발된 [[데이빗 오티즈]]는 첫 턴에 입성한 것과 대비되는 결과이다. 이는 소사가 전술한 코르크 배트 파동 등으로 이미지를 구겼고, 전성기가 2003년부터 시작된 오티즈에 비교해서 소사는 2003년을 기점으로 전성기가 끝났기 때문이다. 이것으로 그는 통산 600홈런 이상을 치고 명예의 전당 투표에서 탈락한 최초의 우타자로 이름을 남기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